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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탄생

별빛 축제가 열리는 밤은 림사 로민사의 어느 계절보다도 더 반짝였다. 도시 전체가 한데 모여 호흡하는 듯한 축제의 공기, 바다 위에 흩뿌려진 별빛처럼 깜빡이는 등불들, 물결을 타고 부서지는 은빛 장식에서 반사된 일렁임. 항구를 스치는 겨울 바람마저 오늘은 유난히 차갑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따스한 기운이 축제라는 이름 아래 잠시 포근해진 세상의 기운에 실려 온화하게 스며들었다.

케이크와 베시는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손을 잡고 달렸다. 커다란 창문마다 초록빛 갈란드가 내려앉아 있었고, 상인들은 갓 구운 쿠키와 따끈한 사과주를 쟁반에 올려 쉴 새 없이 팔아치웠다. 광장 한 쪽에서는 악단이 캐럴을 연주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반짝이는 별 조각이 달린 선물들을 서로에게 자랑하느라 바빴다.

두 사람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달렸다. 밭은 숨을 내쉬며 멈춰 선 곳에서 베시가 손가락으로 한 가판대를 가리켰다. 갓 구워 나온 초콜릿 페스츄리가 달콤한 향을 뿜고 있었다. 케이크는 그 향기를 맡자마자 눈을 반달처럼 휘며 다가갔다. 그의 두꺼운 겨울 외투조차도 그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행복을 가릴 수가 없었다. 크고 맑은 웃음이 터지고, 축제의 밝은 빛이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닿아 춤추듯 흔들렸다.

뜨거운 김을 뿜는 페스츄리와 따끈한 사과주를 양 손에 든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왔다. 항구 난간에 기대어 서는 순간, 조금 전까지 들끓던 소음이 멀어지고 대신 바다가 조용히 숨을 들이켜 내쉬는 소리만이 가만히 두 사람을 감싸안았다.

케이크는 초콜릿이 녹아내리는 페스츄리를 급히 한 입 베어 물더니, 바삭한 식감 뒤에 입 안 가득 퍼지는 녹진한 단맛에 감탄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평소에 임무를 같이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운을 띄고 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진함과 안도가 뒤섞인 따스한 웃음이었다.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그는 만연한 웃음을 띈 채로 허공에 외쳤다. 숨결이 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흩어졌다. 별빛과 가판대의 조명들이 그의 턱선을 따라 일렁였다. 베시는 그 옆에서 사과주 잔을 입술에 가져가며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기분 좋게 상기된 뺨, 반짝이는 눈, 전투 중에는 절대 볼 수 없는 부드러운 표정.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는 그 평범한 한 마디조차 오래 희망해 온 것을 내뱉은 듯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축제가 그에게 얼마나 특별하게 와 닿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특별한 날이니까요. 매일이라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말은 축제의 화려한 소리와 향기, 빛의 흐름과 반짝임 속에서도 묘하게 또렷하게 울렸다. 마치 오늘의 기쁨은 오늘만의 것이라는, 그러나 부정의 의미가 아닌 깨끗한 진실처럼 들렸다. 케이크는 고개를 기울였다. 매일 이렇다면 더 재미있을텐데, 하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베시는 그 표정을 보며 깔깔 웃어댔다. 그리고 별을 닮은 작은 장식들이 매달린 가게 간판을 눈으로 쓱 훑더니, 나지막하게 그에게 물었다.

"케이크 씨는 생일이 언제예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한참. 겨울 바람에 훅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벼운 침묵이었으나 실제로는 깊은 생각이 그의 마음 안에서 먼 길을 돌아가는 듯한 공백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심한 듯 씩씩하게 입을 열었다.

"몰라요."

멋쩍은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것은 분명 인생 대부분을 떠돌아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축제의 영롱한 불빛 아래, 베시에게 그 말은 잠깐 슬프게 들렸다. 그러나 베시는 구태여 슬퍼하지 않았다. 대신 좀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된 답이 있다는 듯, 물 흐르듯 입을 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그럼 오늘을 케이크 씨 생일로 해요!"

케이크는 놀라 눈을 끔뻑였다. 오늘이 생일이라니, 무슨 말이지?

"최고로 행복한 오늘을 생일로 해요. 매년 별빛 축제가 열릴 때면, 이 날이 케이크 씨 생일인 걸로!"

케이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별빛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 뒤로 축제의 빛들이 반짝이며 그의 눈 속에서 한없이 산란했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모르고 살아온 데 큰 유감은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행복한 날' 을 생일이라 불러주고 행복한 마음을 함께 얹어주는 일을, 그는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바다는 잔잔했고, 사람들의 축제 소리는 멀어지고, 머리 위로 희고 푸른 별빛이 눈송이와 함께 흩어졌다. 

케이크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미소지었다. 마치 오늘의 공기, 향기, 빛, 그리고 그의 앞에 선 베시가 전부 그를 축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상념에 빠질 새도 없이, 베시는 사과주 잔을 내려놓자마자 케이크의 손목을 잡아챘다. 마치 이제야 축제의 진짜 목적을 떠올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다른 한 손으로 거리를 가리켰다.

"자, 생일 축하하러 가야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거의 질질 끌다시피 그의 손을 이끌었다. 케이크는 그 힘에 휘청거리며 뒤따르다가, 결국 허둥지둥 발을 굴러 균형을 맞췄다.

"에, 에에? 지금요? 어디요? 자, 잠깐만요~!!"

베시의 손은 익숙한 전투용 장비보다도 훨씬 가볍고 따뜻했다. 축제의 군중 사이를 가르며 달리듯 걷는 베시의 뒤를 그는 완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랐다. 익숙한 식당가와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주점을 지나 마주한 작은 제과점 앞에서 광택이 흐르는 진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 안에는 다양한 케이크들이 놓여 있었고, 그 중에서도 축제용으로 특별 주문을 받고 있다는 안내문 앞에는 큼직한 생크림 케이크가 둥글게 빛나고 있었다.

하얗고 폭신한 크림 위에 크고 새빨간 딸기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에 케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는 가리는 음식 없이 배를 채울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케이크라는 음식을 자신의 이름에 가져다 붙일 정도로 그것을 좋아했다. 예쁘고 반짝이고 심지어 부드럽고 촉촉한 시트에 과일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 아닌가.

"이거요!"

베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생크림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게 주인은 축제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눈치였으나, 베시의 환한 표정과 "생일이에요!" 라는 한 마디에 미소를 짓고 금새 케이크를 준비해 주었다. 케이크는 그 동안 지금 일어나는 일에 현실감이 없어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생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오늘이 생일이라 선언하는 것도 기이한데, 이렇게 '제대로 된 케이크' 를 사서 축하를 해 준다는 것은 그에게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둘은 항구 주변의 등불이 비치는 조용한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에서 빌려온 포크 두 개를 나눠 들고, 베시는 윗부분의 큰 딸기를 하나 집어 들더니 케이크의 코앞에 내밀었다.

"받아요! 첫 생일, 첫 딸기."

그는 잠시 말이 막혔다. 눈으로 보는 순간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리 하고 싶었다. 조용히 흩날리는 눈발, 그 안에서 희게 웃고 있는 베시, 눈앞의 생크림이 묻은 빨갛고 빛나는 딸기. 그는 조심스레 베시의 손끝에서 딸기를 한 입에 받아먹었다. 혀끝에 단물이 스며들었다.

"맛있어요!"

베시는 케이크가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떠 올렸다. 생크림은 사르르 녹고, 시트는 촉촉하고 달았다. 딸기는 찬 바람을 맞아서인지 유난히 달콤했고 그 단맛은 둘 사이에 공기처럼 퍼졌다. 두 사람은 별빛 축제의 소란에서 살짝 떨어진 자리에서 마치 작은 세계 안에 둘만 들어온 것처럼 조용히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서로의 콧잔등이나 얼굴에 묻은 크림을 가볍게 지적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베시는 마지막 딸기를 포크로 집어 케이크에게 내밀었다.

"이건 생일 축하의 마지막 딸기! 케이크 씨가 먹어요."

케이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 딸기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베시의 눈을 한 번 바라보고, 별빛이 내려앉은 항구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말없이 입에 넣었다.

달았다. 그 어떤 생크림보다, 어떤 축제 음식보다도. 그는 천천히 기분 좋은 숨을 내쉬었다.

축제의 음악은 멀리서 흘러왔고, 눈 내리는 바다는 잔잔하게 빛났다. 둘 사이에 놓인 케이크 접시는 거의 비어 있었고, 남아 있는 크림 자국들이 두 사람이 함께 웃은 시간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케이크는 이 순간이 정말 자신을 축하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천진한 웃음에 베시도 함께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잠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얼음이 부서지듯 맑은 소리로 웃었다. 축제의 별빛이 두 사람의 어깨 위에서 반짝였다.

오늘은 분명히 나의 첫 번째 생일.

생일 축하해요, 발렌타인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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