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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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

축하연의 음악과 웃음이 남아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고함과 발굽 소리, 병사들의 쇳소리로 뒤덮였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덫처럼 닫혀 가고 있었다. 초코보 마차는 골목을 가르며 달렸다. 케이크는 마차 안에서 몸을 낮춘 채 난간을 움켜쥐고 있었다. 바퀴가 돌바닥을 긁는 진동이 몸을 넘어 머릿속까지 울리게 만들었고, 그 진동 위로는 아직도 귀에서 떠나지 않는 목소리들이 겹쳐졌다. 도망쳐라, 너희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은 먼저 가요. 그는 이미 여러 번 뒤를 돌아봤고, 그때마다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얼굴들이 하나씩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마차에 남아 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잔존이었다.

도망치는 일은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필요치 않은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싸워서 돌파하는 길이 아니었고, 버텨서 이기는 싸움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방패삼아 살아남기 위해 등을 보이고 달리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자꾸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숨이 가빠질수록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미 잡혔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베시. 그는 그 이름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떠올리는 순간 마차에서 내려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추격의 소리가 한층 선명해졌다. 병사들의 함성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섞여드는 낯선 외침들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케이크는 본능적으로 몸을 더 낮췄다. 이 도시는 지금 비에라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귀와 체격, 복장까지 베시는 군중 속에 섞이기에는 지나치게 눈에 띄는 존재였다. 도망친다고 해도, 숨는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언제나 한층 더 위험이 따를 터였고, 그 사실이 뒤늦게 그를 짓눌렀다. 

초코보 마차에 조금씩 더 속도가 붙을수록 케이크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삼켰다. 이미 너무 많은 얼굴들이 그 충동 때문에 사라졌다. 멈추면 잡히고, 돌아서면 끝이었다. 그래서 마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눈을 감고 앞으로만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을 감을수록 떠오르는 것은 늘 같은 얼굴이었다.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니면 이미 붙잡혔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케이크는 그 두 감정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했다. 베시는 강하다. 혼자서도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거리의 흐름을 읽는 데에도 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마음을 달래기엔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 울다하의 밤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병사들의 시선은 비에라에게 너무 쉽게 머물 것이다.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베시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눈에 띈다는 사실이었다. 강함은 숨어드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손을 움켜쥐었다. 도망치는 동안 그는 이미 수차례 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 결정들에는 항상 누군가를 두고 가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감내해 왔다. 감내하는 법을 배웠고, 감내하는 자신을 믿어 왔다. 그러나 베시에 대해서만큼은 그 믿음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녀를 두고 간 것이 선택이었는지, 상황이 강요한 결과였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그 모호함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마차가 속도를 올릴수록 그는 점점 말수가 없어졌다. 새벽의 혈맹이 흩어질 때 그는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잔혹한 선택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살아남아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그가 도망칠 수 있었던 유일한 정답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언제나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경우. 그는 그 경우를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다. 대신, 만약 베시가 나타난다면,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안도인지, 미안함인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한 웃음인지. 그 모든 것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채, 마차는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때, 마차 뒤편에서 전혀 다른 리듬의 소리가 끼어들었다. 병사들의 발소리도, 마차의 바퀴 소리도 아닌 바람을 찢는 발굽 소리였다. 케이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일렁이는 횃불 너머에서 검은 형체 하나가 튀어나오듯 달려오고 있었다. 초코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베시가 있었다.

옷자락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고 숨은 거칠었으며 도끼날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묻어 있었다. 누군가를 밀쳐내고, 길을 뚫고, 붙잡히지 않기 위해 싸우며 달려왔다는 흔적이 온몸에 남아 있었다. 긴 귀는 바람에 눌려 뒤로 젖혀져 있었고, 무서우리만큼 빛나는 눈은 정면만을 향해 있었다. 망설임 없이, 목적 하나만을 보고 달리는 얼굴이었다. 베시는 마차의 난간이 손에 닿는 순간까지 계산하지 않았다. 고삐를 당겨 속도를 맞추고, 몸을 던졌다. 뛰어드는 순간만큼은 본능이 계산을 앞섰다.

초코보는 마차의 속도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베시는 고삐를 거칠게 당겨 방향을 맞추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병사 하나가 빠르게 추격해왔지만 그녀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초코보의 몸을 틀어 그대로 밀어냈다. 충격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차의 난간이 손에 닿자 그녀는 그대로 마차에 몸을 던졌다. 망설임 없는 이동이었다. 바퀴가 크게 흔들렸고, 마차 안이 요동쳤다.

케이크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를 붙잡았다. 충돌하듯 부딪힌 몸이 그대로 굴러 들어왔고, 그는 반사적으로 팔을 감아 균형을 잡았다. 베시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둘 사이의 거리는 숨결이 섞일 만큼 가까웠지만,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보다 먼저 상황이 밀려들고 있었다. 뒤에서는 아직 추격의 소리가 들렸고 마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베시는 곧장 몸을 돌려 초코보의 고삐를 풀어주었다. 잘 가, 고마워. 짧은 인사를 들었는지, 초코보는 짧게 울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그제야 마차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제서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베시의 시선에는 놀람도, 책망도 없었다. 다만 서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케이크는 그제야 자신은 이미 많은 것을 뒤에 두고 왔지만, 적어도 이 사람만은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베시는 그를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붙잡히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이곳까지 도달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가슴을 세게 쳤다. 죄책감과 안도,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차가 검은솔 들판에 가까워질수록 울다하의 불빛은 점처럼 멀어졌다. 그제야 케이크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베시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에 앉아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밤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는 것을. 흩어지는 와중에도, 서로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음악이 멈추고 비명이 터지는 순간, 짐짝처럼 내던져지는 케이크의 모습에 그녀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나모 여왕의 암살 사건의 범인이 케이크로 지목되고, 병사들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빨랐다. 베시가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건 사건이 아니라 숙청이었다. 누군가를 붙잡기 위한 질서정연한 폭력. 케이크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베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떠났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잡히지 않고 다시 합류하는 것.

비에라는 이 도시에서 너무 눈에 띄었다. 귀나 머리색을 감출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면을 피하기로 했다. 연회장의 가장자리, 커튼 뒤, 술상을 나르는 하인들 사이로 몸을 낮췄다. 병사 둘이 길을 막았을 때, 그녀는 싸우지 않았다. 싸움은 흔적을 남긴다. 대신 멀리 술병을 던져 연회장의 혼란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몇 번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으나 그 때마다 그녀는 최소한의 힘으로 길을 열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대신 밀쳐내고, 베는 대신 비틀었다. 붙잡히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연회장을 빠져나왔을 때, 도시 전체가 봉쇄 중이라는 사실은 명확했다. 문은 닫히고, 주요 길에는 병력이 배치되고 있었다. 베시는 즉시 목표를 바꿨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따라잡는 것으로. 마차가 도시를 떠났을 경로를 머릿속에서 그리며 가장 빠른 수단을 찾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귀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스쳤다.

초코보 관리소는 혼란 속에서도 통제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고, 그만큼 더 필요했다. 베시는 망설이지 않고 정면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은 그녀를 보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그녀는 먼저 움직였다. 위협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도끼를 뽑지 않았다. 대신 고삐를 잡고, 우리를 열고, 가장 성질이 급해 보이는 놈을 골랐다. 초코보는 그녀가 고삐를 쥐는 순간 흥분했지만 그녀는 익숙하게 그 위에 몸을 실었다. 관리인이 뒤에서 도둑이라고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초코보가 골목을 뛰쳐나가는 순간, 베시는 방향을 틀었다. 병사들이 모이는 쪽이 아니라, 마차가 달려갔을 방향으로. 그녀는 속도를 올렸고 추격의 소음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있었다. 다시 만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흔들리며 달리는 마차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베시는 자신이 제대로 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비로소 도달한 곳에 망설임없이 몸을 던졌다.

"발렌타인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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